'가면 증후군 Imposter Syndrome' 이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적지 않은 이들이 갖고 있는 심리장애다. 특히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 중에는 본인 스스로 '내겐 이렇게 성공할 자격이 없어' 혹은 '나는 성공할 만한 사람이 아닌데 그동안 주변 사람들을 속였기 때문에 여기까지 온 거야'라는 생각으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가면 증후군에 빠진 사람이 많다. 가면 증후군은 한마지로 자신의 성공이 '가짜'라는 것을 남들이 알아차릴까봐 두려워하는 '병'이다 이러한 마음의 병이 생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반적으로 한 사람이 성공을 거두기까지는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사회적으로 성공했다 해도 그 자리를 유지하려면 평생 노력해야 한다. 성공한 사람들은 그 과정과 노력이 얼마나 길고 힘든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어려서부터 집과 학교에서 무언가를 빠르게 성취한 사람, 소위 말해 '천재'만 인정받는다고 배워왔다. 사회에서도 노력과 근성을 발휘하는 이들보다는 토끼처럼 '타고난 천재'들이 성공할 경우 더 많이 인정해주는 게 사실이다. 노력을 통해 성공한 사람 중 적지 않은 수가 가면 증후군을 앓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엄청나게 노력하여 성공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 '노력'이 자신이 천재가 아니라는 것을 나타내는 증거라 여기고 사람들이 실망할까봐 불안해하는 것이다. 참으로 슬픈 현상이다.
아이들이 이와 비슷한 심리장애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 여기 방을 새워 시험공부를 한 어느 학생이 있다. 시험 당일 학교에서 만난 친구가 "공부 많이 했어?"라고 묻자 이 학생은 이렇게 대답한다. "어떡하지? 나 공부를 하나도 못했어. 큰일 났네".
이 학생이 친구의 질문에 거짓 대답을 한 이유는 그렇게 하는 편이 안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시험을 못 보면 친구는 '쟤가 정말 공부를 안 했구나'라 생각할 것이고, 시험을 잘 보면 '쟤는 정말 똑똑한 아이구나'라고 생각할 테니 말이다. 이렇게 천재처럼 보이기 위한 행동 전략은 열심히 공부한 자신의 노력을 뒤로 숨기게 만든다.
이건 진짜 내 실력이 아니야
중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학교에서 프랑스어 시험을 봤는데 선생님께서 채점한 답안지를 나눠주시기 전, 반 아이들에게 '자기 점수가 어느 정도일지 스스로 생각해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메타인지 판단을 요구하신 것이다.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시기 전부터 나는 이미 내 점수가 엉망일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다. 나름 열심히 시험을 준비했지만 예상외로 문제가 너무 어려웠던 것이다. 그래서 선생님의 질문에 "전 이번 시험을 망친 것 같아요. 아마 80퍼센트도 못 맞췄을걸요? 라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선생님으로부터 돌려받은 시험지엔 100점이라는 점수가 적혀 있었다. 시험 결과를 믿을 수 없어 당황한 나를 보며 친구들은 '겸손한 척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친구들의 반응이 다소 억울했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당시 나는 가면 증후군에 빠져 있었던 것 같다. 학습 속도가 상당히 느렸던 탓에 학창시절 내내 나 스스로를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또한 시험을 볼 때마다 지나치게 긴장하는 경향이 있있고, 좋은 점수를 받은 후에도 '이번엔 운이 좋았을 뿐, 이건 진짜 내 실력이 아니야'라고 생각했다. 나는 선천적으로 똑똑한 게 아니라 노력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게 될까봐 두려운 마음도 있었던 듯하다.
시간이 흘러 박사 과정까지 마친 나는 직업 시장에 뛰어들 것인지, 아니면 조금 더 연구를 이어나갈 것인지를 선택해야 했다. 중도 포기를 고려했을 정도로 박사 과정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나처럼 노력이 필요한 사람에게 누가 교수 자리를 주겠어? 학교는 똑똑한 교수를 원하겠지'라고 생각하며 교수직에 지원하지 않았었다.
이와 비슷한 걱정은 교수가 된 뒤에도 끊이지 않았다. 종종 나를 '아주 또ㄱ똑한 사람'이라 여기는 이들이 있었는데 그들에게 천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들킬까봐, 나의 실체를 알아버린 사람들의 실망한 얼굴과 마주하게 될까봐 두려워한 적도 있었다. 메타인지로 나를 관찰해보면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인데, 왜 이토록 자신감이 부족했던 것일까?
생각은 필요없어, 빨리 답을 맞춰봐
사람들은 보통 시험 성적과 출신 학교, 연봉 등의 '결과'를 성공의 척도로 여긴다. 하지만 자신감은 그런 결과를 이루어내는 '과정'에서 작용한다. 성공가 자신감을 자연스럽게 연결시키려면 그러한 성공을 만들어내기까지 기울인 노력의 과정을 칭찬하고 용기를 북돋아줘야 한다. 가령 좋은 성적을 거둔 학생에게 친구가 "축하해! 너 정말 열심히 공부하는 것 같더니 시험을 잘 봤구나"라고 이야기하면 "고마워, 나 진짜 노력했어"라고 답하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없으면 자신감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노력이 필요한 상황에서 '타고난 것'이 중요하다고 믿어버리면 자신감이 떨어져 도전을 피하는 경향을 보인다는 실험 결과도 있다. 우리가 노력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노력하는 모습이 곧 '나는 아직 답을 찾지 못했어'라고 고백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기 때문은 아닐까?
미국 아이들과 한국 아이들의 학습 습관을 비교해보면 이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점이 나타난다. 미국 아이들은 문제를 풀 때 자신의 머릿속에 있는 생각을 말이나 글로 차근차근하게 풀어낸다. 어른들은 문제 풀이 시간에 제한을 두지 않으며 아이들에게 "빨리 해" "그래, 이거지"라는 식의 재촉이나 중간 평가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어른들은 아이가 생각을 미처 다 하기도 전에 답을 말해주거나 "빨리 답을 맞춰봐"라고 재촉한다.
일례로 아이가 자전거를 처음 배울 때를 떠올려보라. 몇 번이고 넘어지는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아이는 저 혼자 자전거를 탈 수 있다. 이때 부모가 뒤에 서서 "자전거 페달을 힘껏 밟으라고 했잖아!" "땅만 보면 어떡해! 앞을 봐야지, 앞을!" 하고 소리쳐도 아이 귀에는 들리지 않는다. 부모는 곧 쓰러질 것 같아 보이는 위태위태한 자전거를 탄 아이가 걱정스러워하는 말이겠지만 아이 귀에는 호통이자 잔소리로 들릴 뿐이다. 자신의 말을 듣지 않고 제멋대로 페달을 굴리는 아이의 모습이 부모의 눈에도 곱게 보일 리 없다. 부모의 목소리는 점점 커지고 아이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진다. 얼마나 지났을까. 아이는 슬그머니 자전거에서 내려버린다. 제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잘못된 점만 지적하는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것이다. 자전거를 배우겠다는 목적은 어느새 사라지고 아이는 부모의 눈치를 살피느라 정신이 없다.
이런 과정이 반복되면 아이들은 어른 앞에서 자신의 노력을 보여주지 않으려 할 것이다. 무조건 정답만을 요구하는 어른에게 자신의 노력을 보일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느리지만 자신만의 속도로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에게 느린 아니, 이해력이 부족한 아이, 또래보다 뒤처지는 아이라는 프레임을 씌우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시 한 번 되돌아 봐야 할 때다.
'초등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등메타인지학습] 장기 목표를 이루게 하는 단기적 행동 전략 (0) | 2024.06.16 |
---|---|
[초등메타인지학습] 같은 시간을 공부해도 결과가 다른 이유 (0) | 2024.06.15 |
[메타인지학습] 성장의 밑거름이 될 시행착오를 허락하라 (0) | 2024.06.13 |
[메타인지학습] 불안은 어떻게 학습되는가? (1) | 2024.06.12 |
[메타인지학습] 아이의 자신감을 위협하는 고정관념의 늪 (0) | 2024.06.11 |